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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30 쓰러진 나무 -박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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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나무  /
박남준


강으로 난 길을 따라 바다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흔들렸으므로 한 그루 나무가 쓰러졌다
작은 씨앗 하나 땅에 떨어져 어린 싹을 키우고
한 그루 푸른 그늘을 드리우며 사는 일이란
사람이 태어나 걸어가는 알 수 없는 내일의 길처럼
허공 중에 낱낱히 가지를 뻗으며 길을 내어가는 것이라 여겼다

이제 나무가 쓰러지고
스스로 밀어 올린 그 모든 길의 흔적은 한 점 남김이 없다
그렇다면 나무의 지난 시절은 한갓 덧없는 일이었는가
내일이나 아니면 오래지않아
나는 톱과 낫을 들고 길게 길을 베고 누운
나무의 잠 속에 다가갈 것이다

그리하여 나무들은 아궁이 속에서
내 몸 안에 이처럼 훨훨 타오르는 불길 가지고 있었노라고
탁 소리치며 방바닥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할 것이다
그 방에 등을 누인 내 잠의 어느 한순간
푸른 나무의 생애가, 그가 저 하늘을 향해 길어 올린
가지가지마다의 반짝이던 길들이
한번쯤은 보이지 않을까

굴뚝을 통해 춤을 추듯 솟아오르며 퍼져 가는 연기들이
언뜻 나무의 푸른 그늘을 그려 보인다
한때 나의 젊은 날도 휘감기며 노을 속을 떠돈다
곧 밤은 깊어질 것이고 나는 그 밤의 어느 한 자락을 베고
오랜 잠에 들 것이다

Posted by 봄날i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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